마르크스경제학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

1848년에 시장경제를 맹공하는 색다르고 공개적인 팜플렛이 등장했다. 팜플렛에 등장하는 공산당선언은 칼 마르크스가 저자였다.

제1절 공산당선언(1848년)

그 팜플렛은 공산당선언(The Manifesto of the Communist Party)이었다. 그것의 저자는 여러분들이 이미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칼 마르크스(Karl Marx)였다. 공산당선언에서, 마르크스와 그의 동료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유럽에서 노동자들이 정부를 폭력적으로 전복하고 자본가들로부터 공장을 접수하는 혁명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1. 유럽의 위기상황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00년대 중엽에 유럽을 바라보았다. 상황은 심각하였다. 굶주림과 아사가 만연했다. 유럽 각지에서는 반정부 민중봉기가 빈번히 발생했다. 파리, 뷔르셀, 베를린, 프라하, 비엔나 등 여러 도시에서는 폭동이 일어났다. 프랑스에서는 루이 필립(Louis Philippe) 왕은 사임을 강요당했다. 이런 와중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자들은 단결해서 무력으로 정부를 전복시키고 자본가들로부터 공장을 접수할 것을 호소했다.
    그 당시의 상황으로는 마르크스주의 혁명이 실제로 발생한듯이 보였
    다. 그러나, 사태는 진정되었고 결국에 가서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좋은 방향으로 일은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이제 우리들 모두의 삶에 엄청난 충격을 준 이 주목할만한 사람 즉 천재적이며 분노한 고전학파경제학자이며 혁명가인 칼 마르크스에 대해서 살펴보자.

제2절 마르크스의 생애와 업적

마르크스는 그의 전생애를 통해 “체제(the system)”에 대한 급진저항가였다. 그는 1818년에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 당시 존 스튜어트 밀은12살이었고 그리고 그 때 말더스와 리카아도의『원리(Principles)』책이 막 출간될 무렵이었다. 마르크스는 25세가 되기 전에 이미 곤궁에 처하였었다.
그는 철학을 공부했다(그리고 그는 무신론자가 되었다). 그는 언론계에 들어가 급진적인 논문들을 발표하였고, 그 결과, 그는 독일의쾰른(Cologne)시에서 추방되었다. 그 후 그는 파리로 가서 사회주의자들과 여타의 급진주의자들과 교분을 맺고 더욱 급진적인 글을 발표하여 파리로부터도 추방되었다. 그래서 밸지움으로 갔다. 그러나,1848년(마르크스가 30살일 때)에 공산당선언이 나온 후에 그는 거기에서도 추방되어 영국으로 건너갔으며, 거기서 그는 그의 나머지 생애(35년간)를 보냈다.

1. 마르크스는 가난하게 살았다

마르크스는 그 생애의 대부분 아주 가난해 가끔 굶주렸으며 자주 분노하였다. 1883년에 그가 죽을 때까지 영국에서 산 35년동안 그는 고전학과 경제학자들, 사회주의자들 및 여타의 철학자들의 저술을 연구했다. 그리고 그는 깊이 생각했고 저술했다. 공산당선언 이후 거의20년 뒤에 그는 『자본론』(Das Kapital)의 제1부를 완성해 출간하였다.

 

제2부는 그로부터 20년 뒤인 즉 마르크스가 죽은지 2년 후인 1885년에 발표되었다. 제3부는 그로부터 9년 후인 1894년에 출판되었다. 제2부와 제3부는 마르크스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이며 또한 후원자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의해 출판되었다.

2 마르크스는 하나의 목적때문에 리카아도를 연구했다

영국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며 연구하고 사고하는 기간동안, 마르크스는19세기의 아니 실제로는 거의 모든 시대의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위대한 경제학자가 되기 오래 전부터, 그는 한 사람의 분노한 혁명가였다. 그는 한 가지의 목적을 위해고전학파 경제학자들 특히 리카아도에 대해 장기간동안 치밀하게 연구했다. 즉, 그것은 그의 공산당선언에서 이미 발표되었던 그의 확신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사례를 찾고자 하였던 것이다.

마르크스는 리카아도의 “시장체제(market system)’ 모형의 ‘자연경제법칙(natural economic laws)”의 정확한 개념을 배우고 사용하여 리카아도의 모형에 의해 기술된 경제체제는 그 자체 내에 “자기 스스로의 멸망의 씨앗(the seeds of its own destruction)’을 내포하고 있음을보이고자 하였다. 마르크스는 그가 이미 언급한 확신이 실제로 고전학파의 자연경제법칙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그 결과는 예측가능하고 필연적이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하였다.

각각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현실세계의 상황을 바라보며 동일한경제적 개념과 원리를 사용하면서도, 궁극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극히 상이한 결론에 도달하게 됨은 하등의 이상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제 회고해 보면 스미스나, 말더스나, 리카아도 및 여타의 고전학파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의 기본개념인 ‘자연법칙’에 대해서 약간의 정도의 차이는 있기는 하지만 모두 동의했다. 그리고 그들은 또한 자유방임과 경쟁, 그리고 생산요소의 사회적 수요에 대한 반응에 대해서도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각자는 각자의 미래에 대한 결론에 대해서는 각기 약간의 다른 견해를 피력했다.스미스의 경우에는, 모든 사람들은 경제성장의 과실을 얻게 된다.말더스의 경우에는, 산업가들은 부유케 되나 일반사람들은 빈곤해진다.

리카아도의 경우에는, 지주가 결국에 가서는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되며, 그들의 높은 잉여소득인 지대 때문에 경제성장은 정체된다.마르크스가 그의 순수한 경제저술에서 주장했던 것도 이것과 큰 차이는없다. 이처럼 스미스, 말더스, 그리고 리카아도 모두가 동일하게 ‘자연적인 힘(natural forces)’이 작용하는 것을 목격했으나, 그러나 궁극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각각 상이한 결론에 도달했다. 이와 같이 마르크스도 그러하였다.